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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 리뷰

칠판소리 2016. 12. 21. 15:16
크흐..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미로를 보았습니다. 홍보가 제대로 안된 비운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판의 미로는 동심파괴의 전유물로 알려진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걸 다 보고 났을때 느낀건.. 영화 홍보가 얼마나 중요한지였습니다. 
1.동심파괴 작품? 

동심 파괴 작품은 동심으로 그려진 작품의 허구성을 파헤치는 작품을 두고 하는말입니다. 망토를 두르면 날라갈수 있다는게 동화라고 쳤을때 동심 파괴 작품은 망토가 본의 아닌 자살을 유발하는것이죠. 
제가 아는 마법소녀 마도카라는 작품도 동심파괴 작품입니다. 일반적인 마법물에선 죽은 사람한테 눈물을 흘리면 그 사람이 살아납니다. 혹은 극중 소원은 행복해지는 삶을 살게 해주는 소재입니다. 근데 마도카에선 이와 반대의 경우를 보여줍니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그 사람은 살아돌아오지 않습니다. 혹은 소원을 이뤄서 비참해지는 경우를 보여주고 있죠. 이처럼 동심파괴는 기존의 동화와 연결되며, 기존의 작품 주제의 양면성을 보여주는걸 의미합니다. 
근데 판의미로는 특정 작품을 빗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동심파괴 작품이라고 볼수 없습니다. 다만 이 작품속에 드러나는 cg와 분장술이 너무 훌륭하고 현실적이라 어린이들에게 맞지 않는것 뿐이죠. 하지만 아이들에게 맞지 않는것일뿐 동심파괴는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작품속 상황은 동심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피노키오나 곰돌이 푸처럼 행복에서 출발하는게 아닌 불행에서 출발하는것이죠. 주인공 오필리아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죽고 새 아버지는 아버지라 부르기 어려운 기계같은 인간입니다. 또 머무는 장소는 반군과 정부군의 전투가 끊임없이 진행되는곳이죠. 엄마는 이곳에서 아이를 낳다 죽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오필리아는 기댈곳이 없는 불행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불행은 탈출구를 원하는 동기가 됩니다. 그것이 동화인것이죠. 오필리아가 주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동화속으로 나서는건, 자신에게 놓인 상황을 너무나도 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불행이 만든 동심인것이죠. 



2.작품속 주제


한편으론 오필리아가 기대는 동화속 이야기도 아름답게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벌레, 진흙이 어우러진곳에서 큰 두꺼비를 만난다던가, 눈알귀신도 전혀 친근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전쟁속 상황과 비교해본다면 이곳 또한 머물고 싶은곳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전쟁터보다 낫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동화속 공주가 오필리아고 그곳의 왕이 오필리아를 기다리고 있다는것이죠. 이는 전쟁터와 동화속의 잔혹함은 같지만 희망에서 차이가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오필리아는 동화속으로 가고 싶어하는것이죠. 
또 영화속 현실 내용은 동화보다 압도적 분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실의 비극성을 극도로 보여줌으로서 동화 세계에 가고 싶다는 동기를 자극시켜 줍니다. 혹은 오필리아의 속마음에 대해서도 짐작하게 해주기도 하죠. 

이를 거꾸로 보면 전쟁터가 희망없는곳임을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주제는 전쟁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주제를 인간 자체의 비극성으로 확장할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왜 동화를 원하는것인지 말해주는게 됩니다. 
3.또다른 주제

근데 영화속엔 전쟁에 대한 비판만 존재하는게 아닙니다. 오필리아와 새아버지의 동일성은 또다른 주제를 부각시킵니다. 일단 두 인물은 동일한 존재입니다. 동화를 믿는다는점에서 그렇습니다. 오필리아는 제쳐두고 새아버지에 대해 말하자면 그도 오필리아와 똑같습니다. 새아버지는 군인이고 애국심을 강조하는 파시스트로 등장합니다. 자신의 부친의 시계를 지니고 있다는점, 아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는점은 그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애국심이라는 동화를 믿고 있던것이죠. 
문제는 오필리아와 새아버지가 동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영화속 판타지 존재의 유무를 결정하기 어렵다는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영화속에선 판타지가 없다는 얘기가 될수도 있습니다. 극중 오필리아가 쫓기다가 판과 얘기하는 상황을 새아버지가 몰래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근데 거기선 판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는 오필리아의 동화가 허구일수 있음을 보여주는것입니다. 
이것은 오필리아가 죽어서 지하의 공주가 되지 않았다는 가능성을 심어줍니다. 결국 판타지의 존재 여부를 관객이 선택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당연히 오필리아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환상의 결말을 택할것입니다. 하지만 이 선택을 하면 오필리아의 새아버지 또한 해피엔딩이 됩니다. 그는 전쟁속에서 죽었으며, 이는 파시스트가 추구하는 애국을 위한 희생이라는 군인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환상을 택하지 않는다면 새아버지는 새드앤딩이 되지만 오필리아 또한 새드앤딩이 되버린다는 문제를 안게 됩니다. 결국 무엇을 택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고민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이는 인간 환상의 양면성을 보여주는것이라고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화의 또다른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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